The story/Books

에디토리얼 씽킹 - 01 대단한 편집자, 질문이 자석이라면 정보는 철가루다.

양서연 2024. 2. 2. 18:45

내 기억에 남아있는 책들 중 가장 큰 의미로 와닿은 책이다. 길지 않은 분량에 인상깊게 느낀 부분이 한가득이라서, 두고두고 곱씹고 싶다. 

다닥다닥 붙여놓은 포스트잇들을 다시 들춰보며 기록을 남겨본다. 

 

1. 재료수집: 가능성을 품은 재료 찾고 모으기

자크 빌레글레는 다양한 정치적 주장을 담은 포스터와 상업 광고 포스터가 자연스럽게 찢기고 덧붙여진 파리 길거리 포스터 지층을 있는 그대로 떼어내는 데콜라주 방식(콜라주의 반대적 의미, 재료를 찢고 뜯어 해체하면서 원래 자리로부터 박탈시키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 자크 빌레글레, <122 rue du temple>,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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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동시대 아티스트들은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나 사물을 모으고, 분류하고, 합치고, 교차하고, 변형하면서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나는 미술관에 가서 '아, 이 작가는 대단한 편집자다'라고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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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로 거듭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재료를 알아보는 힘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야, 저런 게 예술이면 나도 하겠다"라고 비아냥거려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사소한 재료에 숨어있던 메세지를 어떻게 발견했을까? 어떤 맥락으로 의미를 빚어갔을까?" 라고 질문하는 편이 에디터적 사고력을 키우는데에 보탬이 된다. 사물, 뉴스, 정보, 데이터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어떤 관점의 이야기는 여전히 드물고, 여전히 귀하다. 그런 이야기를 품은 재료를 발견하는 눈을 갖고 싶다면 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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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함을 문제시하지 않고 그 않에서 머무는 법. 당장은 잡음처럼 들려도 언젠가 그 안에서 희미한 신호가 들려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세상을 보는 태도, 카오스 안에서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질서가 있을거라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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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아, 찾으면 다 나와. 세상에 없는 건 없어." 이런 자세로 세상에 뛰어들면 정말로 찾아내는 사람이 된다. 재료가 없다는 핑계를 도저히 댈 수 없게 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스스로 찾으려는 세계만 발견한다'

 

 

2. 연상: 새로운 연결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

애플의 'iPhone 13 & iPhone 13 pro in green' 글로벌 광고 캠페인 ... '밀림 - 악어 - 뾰족함 - 뱀 - 매끄러움 - 식충식물 - 사냥 본능' 의 경로를 선택했다. 대량 생산한 공산품에 '길들여지지 않는 거친 야성미'라는 연상 이미지를 연결시키기 위한 전력이었다. 녹색이라는 캠페인 주제를 받아든 기획자는 "녹색은 어디서 볼 수 있나? 어떤 감각적 특징이 있나? 사람들은 녹색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연상을 펼쳤을 것이다. 질문은 특정 부분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고, 기억 창고에서 관련된 정보를 끌어모으는 역할을 한다. 질문이 자석이라면 정보는 철가루다. 의미를 가시화하고 언어로 붙잡아두려면 일단 질문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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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파티 효과라는 인지심리학 개념이 있다. 산만하고 소란스러운 환경 안에서도 자신에게 중요한 정보를 우선으로 알아보고 선택하는 뇌의 기능을 뜻한다. 파티장에서 수많은 사람이 떠들면 우리 귀에는 청각 정보가 대량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우리 뇌는 자신에게 중요한 정보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다른 소리를 잡음으로 처리해버린다. 자동차를 새로 구입하면 내가 산 모델이 갑자기 길에 많아진 기분을 느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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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원리로 질문은 지금 내가 어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짚어준다. 질문을 품고 있으면 정보는 딸려온다. 질문이 자석이라면 정보는 철가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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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에릭 호퍼는 '길 위의 철학자'에서 이렇게 썼다. "언어는 질문하기 위해 창안되었다. 대답은 투털대거나 제스처로 할 수 있지만 질문은 반드시 말로 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첫 질문을 던졌을 때부터였다. 사회적 정체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할 충동이 없는 데에서 비롯된다." ... 에디터의 커리어적 정체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할 충동이 없는 데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