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파니핑크, 여자의 행복에 꼭 남자가 필요한건 아니죠
영화과를 전공하며 수업시간에 종종 고전예술영화들을 접할 기회가 (강제로) 생긴다.
정말 이상한 영화들도 많고, 신기한 영화들도 많다는 것을 새삼 알게된다.
이번에는 독일 영화 <파니핑크>를 보게 되었다.
원제는 <Nobody loves me>
정말... 도대체 누가 이런 제목으로 국내 수입을 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영화의 내용을 정말 잘 반영하고, 핵심적인 감독의 의도가 들어가있는 제목을... 이런식으로 바꾸다니...
영화 수입/배급 시장에서 종종 이런식의 영화제목 번역이 보이는데
어떤 이유인지 정말 궁금하다.
“그리 매력적인 얘기는 아니죠?” 하지만 그녀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직접 관을 짜고 그 속에 들어가보는 체험까지 하며 죽음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볼 정도이지만, 정작 죽음 이후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여자의 행복에 남자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만나게 될 사랑을 절실하게 기다린다.
이처럼 그녀의 삶은 어찌 보면 모순적이지만, 이러한 태도에서 그녀의 솔직함과 진중함이 느껴진다. 그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걱정하고 그렇기에 더 스스로에게 애틋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공감하고 인생영화라고 말하게 된 이유가 이것 때문일지 모른다. “그게 그렇게 큰 바람인 건가요?” 라고 묻는 그녀의 말 속에는 단순히 연애와 결혼의 상대를 찾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물음이 담겨있었다.
이런 파니 핑크에게 오르페오는 차근히 스며들어 서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유일한 위로가 되어준다. 파니 핑크에게 엄마와 직장동료는 가까운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내적으로는 오히려 거리감을 느끼는 관계이지만, 오르페오는 그녀가 유일하게 온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준다. 해골 귀걸이를 즐겨하는 독특한 취향의 그녀를 위해 오르페오는 기꺼이 해골 분장을 하고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준다.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한 남자에게 상처받았지만, 그녀에게 정말 소중한 친구가 마음 속 따뜻한 추억을 만들어준 것이다. 파니핑크와 오르페오의 인연은 인생에 스쳐가는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파니핑크의 인생에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오르페오에게 이런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보며 처음 맞닥트리는 오르페오의 모습은 거부감을 일으킬 정도로 낯설고 이상하다. 알 수 없는 분장과 얼굴에 뿜어 대는 담배연기, 기괴하고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추는 춤으로 평화로운 삶을 방해하는 모습들은 오르페오를 그저 이상한 이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러나 한발자국 다가가 바라본 오르페오는 누구보다 진솔하고 현명했다. 그리고 파니 핑크에게 진심으로 위로가 되어주는 오르페오의 모습으로 인해 보는 이는 어느새 파니 핑크처럼 그에게 마음을 열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오르페오가 이 세상을 떠난 이후 이어진 그녀의 삶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이 보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의 등에 뜬금없이 숫자 23이 그려진 것은 오르페오와 함께하는 시간동안 파니핑크가 성장한 모습을 반영하지 못한다. 그녀가 영화의 원제인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Nobody Loves Me)’처럼 자조하던 모습에서 스스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갈망하던 사랑을 찾게 될 희망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나름의 독일식 코믹 요소를 넣기 위한 시도였다고 위로해보지만, 파니핑크에 대한 여운처럼 아쉬움 또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