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Books

이옥선 작가의 즐거운 어른

양서연 2025. 1. 27. 14:58

순례길 한가운데에서 팟캐스트를 듣다 울어버린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 날, 유독 길게 느껴졌던 길에서 이옥선 작가님의 유난스럽지 않게 쾌활한 목소리는 또 한명의 롤모델을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한국에 가면 제일 먼저 읽을 책! 이라는 소문(?)을 내어뒀었는데, 

먼 길을 돌아 드디어 도착한 집에 나의 자매님이 책을 사두었더라. 

내 나이만큼 같이 산 정인지, 멀리 떠나있는 동안 꽤나 나를 아끼는 마음이 커졌나보다.

 

그렇게 아주 고마운 마음으로 읽고 싶었던 책을 손에 들었다.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내용들도 반갑게 읽어나갔다. 

 

책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이옥선 작가님이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무게감과 통찰에 비하면

마치 솜털같은 책이었다. 

아마 그래서 더 의미 있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내공이 깊이 쌓인 사람이었기에 이런 가벼운 책도 의미있게 느껴졌을 수도.

 

아무튼, 가벼운 만큼 긴 여운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로 "책을 읽으면 꼭 한 구절씩은 남겨두어야한다"

를 지켜보려는 마음이다. 

나의 장례는 그 시기의 일반적인 방법으로 할 것이며 화장해서 유골은 너희 아빠를 장사 지낸 것처럼 하고, 제사는 지내지 말고 그날 시간이 나면 너희끼리 좋은 장소에 모여서 맛있는 밥을 먹도록 해라. 또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너희 아빠는 꽃피는 봄에 돌아가셨으니 나는 단풍드는 가을에 떠나면 좋겠네. 그러면 너희는 봄가을 좋은 계절에 만날 수 있을테니. 끝.
p74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자기에게 익숙한 음악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 그러나 언제까지나 자기가 들어왔던 곡만 듣고 내입맛에 맞는 음악만 듣는다면 우리는 새로운 것을 접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어느 음악이나 첫번째에 바로 좋아지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생소하다. 몇 번쯤 반복해서 듣고 조금씩 익숙해져야 그 좋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세상의 이치와 같아서 내가 새로운 문화 현상이나 신문물을 호기심을 가지고 보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요즘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촉각을 세우고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는 일을 게을리하면, 순식간에 요즘것들 ㅉㅉ 운운하며 시대와 불화하는 늙은이로만 존재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p185

 

 

 

다시 적어보고 나니, 

'내가 바라는 어른'에 대한 로망이 담겨있는 부분들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다시 가볍고도 가볍지 않은 글들을 보고 싶을 때 다시 펼쳐볼지는 모르겠지만, 

이정도로 감상은 충분한 것 같다. 

 

아, 이제 조금 읽기 어려운 글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한동안 술술 잘 읽히는 글만 읽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챌린지가 필요하다. 

 

 

 

 

 

 

이옥선 작가의 즐거운 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