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놓쳤다.
침대에서 눈을 뜨니 뭔가 쎄한 것이, 역시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비행 시간 한시간 전에 일어난 나는 뇌정지가 와버려서, 그대로 충전기를 뽑아 침대에서 내려간 뒤, 보조 가방에 이것 저것을 쑤셔넣고 그대로 방을 나왔다. 가방을 꾸릴 여유도 없이 바로 택시(디디)를 잡으려 핸드폰을 켰으나, 이놈의 토스뱅크는 잔고가 남아있는데도 잔액부족으로 결제가 되지 않았다. (알고보니, 잔고는 있지만 결제 예정 금액이 잡혀있어서 그런거였다...) 몇번의 시도 끝에 다시 카드를 등록하고 디디를 호출했는데, 빌어먹을 차가 오다 말고 증발해버렸다. 그것도 아주 오래 기다리게 해 놓고서!!! 다행이 다시 차가 잡혔지만, 느긋한 인도 운전사는 애처로운 내 말을 듣고서도 서두를 생각이 없어보였다. 아니면 그게 그의 최선이었을지도...
그렇게 비행기를 놓쳤다. 단호박인 무인 키오스크에서 기가 죽은 나는 다시 뇌정지가 와서 그냥 벤치에 앉은 채, 다른 비행기를 예매했다. 이미 학교는 놓치게 되었고, 나는 비행기를 두개^^ 예정에도 없던 택시도^^ 타버려서 멍청 비용을 훌렁 털려버리게 되었다.
어제 슬기님, 슬기님 남편분과의 식사 이후 영상 제작에 대한 부담을 덜어야지 생각했던 나는 이왕 사건이 생긴 김에 브이로그나 찍어보겠다는 심산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최대한 찍는 사람의 편의에 맞추어 아무렇게나 찍은 영상이겠거니 생각하며 터덜터덜 짐검사를 받으러 들어갔다.
여기서부터는 사진보다 영상이 많아서, 나중에 블로그에도 첨부를 하겠지만...
이 모든 멍청비용을 다 감수하고서라도 값진 인연을 만났다. 커피를 기다리고 있던 와중에 나에게 말을 건 영국인 아저씨 Carlo.
그는 아시아에서 오랬동안 일을 해온 경험으로 내가 한국인인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물론 나이 어림은 틀렸지만, 그래도 이렇게 자신있게 동양인의 나이를 가늠해보려고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그 중에서 도 나에게 남은 것들이 있다.
- 영어 실력은 지수 그래프 모양으로 늘 것이다. 최소 기간이 1년이니, 꼭 호주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갈 것.
- 고아원과 위탁 가정에 대한 시나리오를 써라. 실화에 기반한 스토리는 언제나 힘을 가진다. 꼭 단편영화를 만들어서 유명해질 것.
- 넷플릭스 추천: Peaky Blinders, The Boys in the Boat 그리고 넷플릭스 영화 하나 더 + 그의 아들이 자막 작업에 참여한 일본 드라마.
- 메인 비치 근처에 있는 5성급 호텔에 지원해서 일을 해라. 꼭 그곳에서 일해라. 영어를 배우고, 친절하고 부유한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어필할 것.
- 시드니에 다시 오면 본다이 비치 말고 발도로 비치에 갈 것.
- 비행기를 놓쳐서 체크인 카운터에 가면, 왠만하면 무료로 바꿔준다...는 거....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
강한 여운을 남긴 채로 연락처를 주고 받고 그와 인사했다.
영어 수업보다 더 값진 경험이었다.
뭉게 구름이 어떻게 떠있을까. 너무 무겁고 포근해보인다는 문과생 따위의 생각을 하며.
다가오는 콜랑가타 비치의 모습을 감상하였다.
지난 주말 집을 옮긴 홈메이트 시오리의 선물.
아쉽긴 하지만 더 응원하게 될 것 같은 나의 첫 일본인 친구였다.
시간 이 참 빠르네...
어중간한 시간에 집에 도착해서, 간단하게 미고랭을 먹었다.
이제 다음주면 나도 내집에서 요리하면서 밥을 먹을 수 있겠지.
'Travel > Austral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주 박물관, 세인트 메리 대성당 뷰 : 시드니 여행기 3 (0) | 2024.03.05 |
---|---|
10달러 시드니 크루즈 투어, 시내 관광 : 시드니 여행기 2 (4) | 2024.03.05 |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아 : 시드니 여행기 1 (4) | 2024.03.04 |
골드코스트 HOTA 모닝 마켓, 홈스테이 음식 : 0226 (0) | 2024.02.26 |
고민 끝에 호주 행을 결정했다 - 어학연수/유학센터/상담 (0) | 2023.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