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동안 짧게 떠나온 시드니 여행의 목적은 한국에서 여행오시는 지인분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저 그분들과 만날 수 있는 주말 일정을 정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내가 간 그 주말이 시드니에서 일년에 한번 열리는 마르디 그라스 축제의 마지막 날이었던 것이다!!
토요일 오후가 되자, 거리에 사람들로 가득찼고, 시내 곳곳에서 도로가 미리 통제되었다.
의도하지 않았던 여행이었지만,
최근 몇년 간 가장 놀랍도록 새롭고 즐거운 층격을 받았던 하루였다. 이 날 저녁에 본 모든 사람들의 눈은 행복해보였고, 몸은 자유로웠고, 그 공기 자체가 춤을 추고 있는 듯 했다. 어떤 몸의 모양을 가지고 있던 중요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취향과 끼를 마음껏 발산하는 모습, 그리고 그로 인해 자유로워진 사람들이기에 그 행복함이 하늘을 뚫을 것 같았다.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고, 엄청나게 많은 양의 영상을 찍었다. 단순히 사진으로 남겨지지 않을 장면들이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고, 정지된 사진으로는 그 무엇도 담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일정이 없었던 우리는 거리를 걷다가 조금 사람이 적은 곳에 자리를 잡았고, 펜스 바로 앞에 서서 퍼레이드를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관람객들의 연령이다. 머리가 새하얀 노년층이 꽤 많이 보였고, 캠핑의자를 대동하여 퍼레이드를 기다렸다. 연령의 스펙트럼이 이렇게나 다양한 퀴어 퍼레이드가 있을까? 마르디 그라스라는 이름의 정확한 뜻은 모르겠지만, 단순히 퀴어 퍼레이드라고 부르기에는 그 단어가 너무 작아보였다.
중간에 비가 왔지만 사람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6시에 시작한다던 퍼레이드는 당연하다는 듯이 7시 반으로 미뤄졌고, 우리는 거리에 서서 함께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친구가 자신의 핸드폰으로 다같이 할 수 있는 게임을 켜주었고, 덕분에 시간 순삭이 가능했다 ㅎㅎ. 한국인 두명과 인도네시아인 한명은 신명나게 넷플릭스 + 영화 + 한국웹툰 이야기를 나누었고, 수줍은 다른 친구 한명은 웃으며 들어주었다.(미안해ㅠ 어디 사람인지 기억이 안나네)
이날 동남아시아 친구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었는데, 한국 문화 콘텐츠에 깊숙이 빠져 있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물론 여러 기사를 통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그들의 입에서, 눈에서, 표정으로 보니 참 감회가 새롭더라. 내가 있는 이곳 골드코스트는 한국 문화가 그리 인기 있지 않은 지역 같다. 일단 한국인도 별로 없고, 일본 문화나 음식이 워낙 유명해서 어린 친구들이 즐기는 케이팝이나 케이드라마는 그리 유명하지 않다. 그런데 시드니에 가서 아시아의 젊은이들을 만나니 참 다르더라!!
7시 반이 조금 넘자, 드디어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다양한 옷을 입고 활짝 웃는 사람들이 오토바이 행진으로 퍼레이드의 막을 열었다. 그 이후에 각각의 커뮤니티에서 푯말을 들고 자신들의 퍼레이드를 이어갔다.
참가자는 정말 모든 사람이었다. 어린아이, 시각, 청각 장애가 있는 분들, 휠체어를 사용해야하는 장애가 있는 분들 그 외에 모든 유형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 함께했다. 모두가 자연스러웠고, 당연해보였다.
그리고 그에 더해 나의 문화충격을 더욱 극대화시켰던 것은 바로 공공 단체의 참여이다. 공무원, 선생님, 의사, 경찰, 군인, 119, 해상구조대, 간호사 등등등... 왠만한 공공분야 부문의 직업 단체가 거의 다 참여했다. 그들의 유니폼을 입기도 하고, 자유로운 의상으로 참여하기도 하더라. 그들이 모두 퀴어는 당연히 아닐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그 여부와는 전혀 무관하게 그저 이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사회 전체가 이 축제를 지지하고 함께 즐긴다는 표현이 되는 것 같아 정말 감명깊었다.
앰뷸런스 차가 응급상황 대기를 위해 일하고 있는게 아니다!! 퍼레이드에 함께 참여하는 팀으로 행진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로 놀라웠던 것은 기업들의 참여이다. 호주의 이마트라고 할 수 있을만한 대형 체인 마트부터, 온라인 편집 툴, 대형 통신사 등등 다수의 기업이 퍼레이드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이것이 광고 홍보 효과도 좋고 기업 이미지 제고에 긍정적 영향을 주어서라는 이유가 있겠지만, 그 자체가 너무 대단해보였다.
보기만 해도 흥이 나더라.
발바닥이 떨어질 것 처럼 오래 서있고 나서야 퍼레이드가 끝이 났다. 200팀의 퍼레이드가 장장 3시간 동안 펼쳐졌다.
내 인생에서 최고의 퍼레이드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맛있는 팟타이를 먹고 집으로 걸어갔다.
버스가 모두 끊긴 시드니였지만, 축제의 여운이 남아 도시는 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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