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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IT 대기업 퇴사 후기: 퇴사 3일 차 일상 기록

퇴사 3일차. 지난 1년의 기억이 더 미화되기 전에 기록해본다. 
 

1일차.

책상을 정리하며 새롭게 구조를 바꾸고, 퇴사를 기념하며 받은 선물들을 정리하여 자리에 넣어두었다. 
어쩌다가 침대 밑의 모든 물건을 꺼내 탈탈 털고, 먼지를 닦아냈다. 
밍기적거리다가 일어난 오전에 조금의 보람을 더해주는 청소. 
 
아직 슬랙이 연결되어있다. 여전히 울려대는 알람을 꺼버리고는 기분이 싱숭생숭해진다. 
나의 마음을 괴롭게 하였던 그사람의 번호는 영영 저장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어제 마지막으로 나와 점심을 함께한 동료분의 말을 떠올린다. 이 회사에 다니는 동안 유일하게 나와 결이 비슷하다고 느꼈던 사람이었다. 역시나, 그 사람으로 인해 무기력해지고, 활기차던 텐션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고백하는 그녀. 나만 느낀 것은 아니었다는 기분은 참 큰 위로가 된다. 우리는 퇴사를 고민했고, 나는 퇴사를 선택했다. 그녀는 계속 그 곳에서의 시간을 이어나갈 것이고,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운동을 갔다. 백수의 하루에 운동은 필수라고 한다. 의미 없는 것 같이 느껴질 수 있는 삶에 보람을 채워주는 중요한 일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취준생은 운동을 너무 열심히 하면 안된다나...? 현실에 안주하게 되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로 떠다니고 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실업급여를 알아봤다. 내가 퇴사를 결단한 가장 큰 이유! 어중간한 퇴사로 실업급여를 놓칠 수는 없었다. 어학연수를 앞두고 있기에 전부 받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너무 다행이도 어학연수를 다녀와서 신청할 수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바로 실업급여 신청을 중단했다. 돌아와서도 여유있게 취준을 할 수 있다니, 기분이 째진다. 
 
회사의 복지로 많이 살 수 있었던 책들을 둘러본다. 병렬 독서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2일차.

아침에 일어나기가 귀찮다. 그래도 괜찮아서 좋다. 
재택 위주였던 회사 생활이 끝나니, 퇴사를 해도 잠시 휴가 중인 것만 같다. 
인수인계를 해준 사람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신중하고 또 신중한 사람이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그래도 건너지 않을지를 고민하는 사람. 그래서 배울 점도 많았고, 잘 안맞는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 사람이 참 좋아하는 동료였다. 그래서 질투를 많이 했지만, 좋은 사람이었기에 미워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녀가 물어보는 것에 대해 친절하게 답변했다. 언제든 연락달라는 말을 덧붙이며(정말 진심이다) 훈훈한 인사를 주고 받았다. 
 

3일차. 

앞으로의 3주 간 어떤 일들을 준비하고, 정리해야할지 살펴봤다. 이제는 회사 일정이 없어진 나의 구글캘린더를 보고 일정들을 채웠다. 
조금 생산적인 일을 했더니, 놀고 싶어졌다. 그래서 가장 쉬운 방법으로 한시간 정도 숏츠를 감상(?)했다. 버리는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트렌드를 익히는 시간이라고 위로하며. 
3시에 운동을 가리라 다짐했던 터라, 더이상은 누워있을 수 없어서 일어났다. 이것 저것 정리하고 헬스장에 도착하니 어느덧 3시 30분이 되었다. 시간은 왜이리 지맘대로 흐르는가. 
천국의 계단을 오른다. 재택으로 나빠진 눈에 조금이라도 휴식을 주기 위해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창밖을 바라본다. 겨울이다. 
짧은 유산소에도 쉽게 지쳐버린 현대인은 어깨가 넓은 사람이 되기 위해 상체 근력 존으로 향한다. 나약한 팔에 챌린지를 주다가, 사물함 뒤에 가려져 있는 창문을 발견했다. 좁은 틈 사이로 보이는 아파트의 모습이 예쁘더라. 그래서 별안간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역시 퇴사를 하면 별것도 아닌 것이 아름다워 보인다. 
 
이제 보람찬 마음을 가지고, 저녁 약속에 나간다. 이제는 전전회사가 되어버린 옛 직장 동료들과 함께 홈파티가 예정되어 있다. 감사하게도 나를 아껴주고, 오래 보고 싶어해주는, 그리고 나 역시 그런 마음인 사이. 늦지 않도록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겠다.